이십대의 봄은 끝. monologue

덥다.
지구의 종말을 알리듯
이제는 상큼하고 시원한 오월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과거엔 있었던 적이 있기나 했었을까 하는 행복한 오월은 역시나 없었다.
총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총행복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하는것일까
어느 시점에 너무 폭주해버리면 나중엔 서 있는것 조차 힘든 세월이 오고야 만다.
그 찬란한 오월의 한가운데에 태어나기 위해 나는 그만큼의 행복을 버린 운명이었나보다.

맞다.
아마 그런 나의 모습을 경계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는 그 길에 있다는 상기의 노래처럼
이미 많이 굳어져버린 내 모습은 평범함의 범주와 많이 어긋나있다.
아이러니한것은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원했던 바이지만,
지금 돌아보니 평범함 속에서 행복함을 누리고 있는 그들이 몹시나 부럽기만하다.
게다가 이젠 그 주변을 보살펴주던 벗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게 씁쓸하기만 하다.
그것은 정상적임에 대한 판단의 기준의 문제를 넘어 정상적임 위의 존재가능성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었나보다.

시간의 치유력은 몹시 잔인할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견딜수 없이 처절했던 추운 계절의 기억들도,
어제 밤 분명히 내 앞에서 웃고 있던 내 동생도,
항상 어딘가에는 있어줄 것 같았던, 이젠 더 이상 찾을수 없는 친구도,
어느덧 뜨거워진 하루하루속에서 만성이 되어버린, 무뎌짐에 가까운 아픔으로 남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그럭저럭 살아지고 있다.

살아가는 방법을 일반화하긴 어렵다.
예상할수 없는 일들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을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가지 확실한건, 보다 씩씩해져야한다는 것이다.
어린애처럼 굴어봤자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피폐해지는 건 나 자신밖에 없기 떄문이다.
그래서 씩씩해야만 한다.

사랑이 없다고 해서 못사는건 아니라, 그냥 재미가 없을 뿐이다.
식도락을 위해 먹는 끼니가 아니라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쑤셔넣는 밥숫가락처럼.
이렇게 씩씩하게 살면, 좀 더 어른인척해야하는 서른살의 봄에는
시간에 희석된 아픔들에 의연하게 웃어줄수 있을것이다.



-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jay6.egloos.com/tb/4965180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